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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뱃할/번역] Aliens Made Us Do It 6


만약 전에 조사를 좀 해뒀더라면, 해결책을 생각해낼 충분한 시간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단 한 번도 할이 심각한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올 거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브루스의 일부는 여전히 이 모든 격리 어쩌고 하는게 그를 짜증 나게 하기 위해 특별히 계획된 플롯일 거라 생각했지만, 정석적인 자기중심적 사고라는 걸 알 만큼의 심리학 지식은 있었다. 


달레샨 독감에 대해 알아낸 그 어느 것도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물론 지구인의 감염은 전례 없는 일인 탓에 확실히 말하긴 어려웠지만 지구인과 생체적으로 매우 유사한 종족이 살고 있는 세계가 노출된 적은 있었다. 재빠른 죽음 대신 천천히 산 채로 삼켜버리는 종류의 병원균이라는 걸 알기에 충분한 자료였다.  


브루스는 텅 빈 모니터가 켜지길 바라며 파랗게 깜빡이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젠장, 할. 망할 자식. 시간이 흘렀지만 아무런 신호가 없었다. 할이 다시 띵 하고 알림을 울렸을 때를 대비해 모니터 옆에 간이침대를 가져와 틈틈이 눈을 붙였다. 마침내 띵 소리가 들렸을 때 잠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브루스는 재빨리 일어나 알프레드가 덮어주고 간 담요를 걷어냈다. "랜턴." 그는 허겁지겁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받았어. 네가 시도해봐야 할 게 있어. 혹시—"


"젠장, 미안해. 깨우려던 건 아니었어. 이따가 전화할게, 다시 자."


"아냐." 그는 키보드를 찾아 더듬거리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기다려. 조사를 좀 해봤는데, 내가 잠재적 치료제를 개발할 동안 바이러스의 진행을 늦추기 위해 해 볼 수 있는 게 몇 가지 있어. 잠깐만 있어 봐." 브루스는 알프레드가 옆에 두고 간, 아직 먹기 좋게 따뜻한 커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곤 할의 얼굴에 초점을 맞췄다. 잿빛만큼 창백하진 않았지만, 애초에 구릿빛 피부가 그렇게 보여선 안 되는 거였다.


"몸은 좀 어때?" 브루스가 물었다.


"알잖아, 괜찮아졌어."


"열은?"


"오락가락해. 보통 오르는 쪽이지만. 조금 어지럽네. 방이 그렇게 크지 않아 다행이지."


"다른 사람과 연락해 봤나? 네 증상에 대해 알렸어? 어떤 치료법을 쓰는 거지?"


할이 깨질 듯한 미소를 지었다. "치료법? 그런 거 없을걸. 여태까지의 치료법을 요약하자면, 6주 동안 박스에 가둬놓고 한참 있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열어보기야."


"음식이나 음료에 변한 점은?"


"오." 할이 뭔가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깜빡 잊고 있었네. 뭘 좀 넘기긴 해야겠어."


"네가 식판을 내놓지 않으면 그들이 문을 열고 확인할 가능성이 있나? 최소한, 조망창이라도 연다거나?"


"모르겠어. 사실 이 방 전체가 조망창이 아니라곤 말 못 하겠네. 아마 계속 나를 모니터링하고 있었을 거야. 내가 아프다는 걸 알고 있을걸."


그럴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아니길 바랐었다. 애초부터 할을 치료할 계획은 없었던 것이다. 약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들 종족을 위해 아껴놓고 있을 테니까. "군단은 어때." 브루스가 말했다. "그들에게 네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려야 해. 조약 위반일 게 분명해. 그들에게 말할 수 있다면—"


"이미 해 봤어."


"이미 해 봤다니 무슨 소리지? 반지가 먹통이거나, 답이 오질 않았다는 소린가?"


"내 말은, 이전이랑 똑같은 답을 받았다고."


브루스는 입을 다물었다. 군단은 그를 죽게 놔둘 것이다. 무엇을 위해? 그들이 다양한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규칙 나부랭이를 지키자고? 고작 그린 랜턴 한 명이니까? 아니면, 그가 유일한 인간이니까?


할은 머리를 뒤로 기댄 채 스르르 눈을 감았다. 호흡이 훨씬 얕아져 있었다. "조던."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일어나. 마지막으로 뭘 마신 게 언제였어?


할은 붓고 튼 입술을 핥았다. 열이 통제불능으로 치솟은 게 분명했다. "기억 안나." 그는 말했다. "마시려고 했어. 물을 주긴 했는데, 그냥, 방 반대편에 있고…밤엔 길 찾기가 힘들었어. 낮에도 마찬가지고. 나도 몰라."


"집중해. 할 수 있는 한 물을 많이 마셔야 해. 지금 당장은 그게 유일한 약이고, 전부 필요해. 물을 가지러 갈 수 있겠나?"


"응, 잠시만."


브루스는 할이 몸을 일으키려 애쓰는 모습을 보았다. 몇 주 동안 그가 서 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할은 계단 난간만큼이나 말라 보였다. 더 나은 식사를 줬다면 상황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브루스는 가슴에서 날뛰는 공포에 맞서 싸웠다. 상황을 파악할 시간이 몇 주나 있었음에도 그는 무시했다. 이제 할은 브루스 때문에 죽게 되리라.


그는 벽에 기대서 물 한 잔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침대로 돌아갔다. "괜찮아." 할은 침대로 쓰러지며 웅얼거렸다. 그의 모습이 화면에서 사라졌다. "이제 자야겠어."


"모니터는 켜놔."


"그래."


"좋아," 클락이 통신기를 통해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걸 보냈어. 봤어?"


"그래." 브루스가 암울하게 대답했다.


"크립톤에서 달레샨 독감이 퍼졌다는 기록은 못 찾았지만, 그런 병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던 것 같아. 크립토니안 생체에도 똑같이 반응하는 걸로 보여. 하지만—"


"노란 태양광에 노출된 크립토니안에겐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모르지." 브루스가 말을 끝맺었다. "그래, 이미 생각해봤어. 하지만 우리가 감수할 위험이 아니야. 그리고 네가 데리러 갔을 때 조던의 의식이 남아있다면 저항하려 할 거야."


"당연한 말씀." 모니터로부터 힘없는 대답이 들려왔다.


"조용히 해."


"알겠어, 엄마 아빠가 어른들끼리 얘기 할 동안 그냥 여기 누워 있을게. 너랑 그 비밀 미팅." 할의 발음은 불분명했고, 카메라에 잡히지도 않았다—브루스가 볼 수 있는 건 텅 빈 벽이 다였다. "너네랑 다이애나가 가지는 비밀 모임이 그룹 섹스로 끝나는지 아닌지에 대해 내기가 있었다는 거 알아?"


"실제로 그래." 클락이 말했다. "두 사람도 그룹이긴 하지, 어쨌거나."


할의 짤막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저런, 불쌍한 박쥐." 그가 말했다. "항상 눈치 없이 끼어 있네."


"건수 주지 마." 브루스가 클락에게 말했다. "번역이 안 되니까 마지막 파일을 다시 보내줘. 와치타워로 가서 로그인해줬으면 해. 거기 있는 랜턴들의 파일이랑 비교해 보자고."


"내 로그인 필요해?" 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미 알고 있어."


"어련하시겠어. 물어본 내가 바보지."


"제발 좀 쉬어."


"으음. 제발이라고 말한다면야." 그의 목소리가 다시 불분명해졌다.


"알겠어. 곧 연락하지." 클락이 말했다. "그리고 쉬라는 충고 말인데, 자네한테도 해당돼."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클락은 뚝 하고 통신을 끊었다. 




그게 끝이었다.


사흘간 할 조던으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3주 동안 약 6시간 간격으로 신호를 보내던 통신이 완전히 잠잠했다. 할이 의도적으로 그러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모니터를 실수로 쳤거나, 고장 났거나, 혹은 일부러 끊어냈거나. 이유가 뭐든 간에 브루스가 올려다본 순간 화면이 갑자기 파랗게 변했다.


사흘 동안, 브루스는 기다렸다. 통신을 다시 연결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써봤지만, 케이브나 와치타워나 지구의 어느 곳도 신호를 고정시킬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 그 행성이 쓰는 통신 기술이 뭐든 간에 여기서 복제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였다. 그렇지만 사흘 동안, 미쳐버릴 것 같은 사흘 동안 브루스는 반대편에 아무도 없다는 명백한 답을 거부하며 안간힘을 썼다. 할은 달레샨 독감이 완전히 퍼지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고 말했지만 비교할 수 있는 지구인의 사례는 없었다. 어쩌면 지구인의 경우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지도 몰랐다. 최소한의 물, 최소한의 음식, 아무런 약도 없이 철제 상자에 갇혀 있는 동안 할의 열은 위험할 정도로 빠르게, 수습하기 힘들 만큼 높게 치솟았다. 거기서 죽게끔 가둬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브루스는 생생한 복수 판타지에 기름을 부어 왔지만, 이제 그 모든 건 그들에게로 향했다. 만약 할 조던이 죽으면 책임이 있는 자가 누구이든 간에 끔찍한 대가를 치를 것이며, 그는 모든 걸 지켜볼 것이다. 만약 할이 죽는다면, 브루스는 그들을 철제 상자에 가둬놓은 채 그들의 고통을 보고 즐길 것이다. 브루스는 그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광경을 보며 오로지 즐거움만 느낄 것이다.


그는 살인마가 아니라는 이유로 불살을 고수하는 게 아니었다. 스스로가 기꺼이 살인할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죽이지 않으려 한 것이다. 브루스는 그 사실을 알았다.


사흘째 되던 날, 할이 그에게 띵 하고 신호를 보냈다. 브루스는 키보드로 돌진했다. "채널을 열어둬." 그는 다른 뭔가를 하기도 전에 말했다. "할? 내 말 들려? 채널을 열어둬야 해, 다신 닫지 마!"


"미안해." 할이 말했지만, 어딘가 평소 같지 않았다. 부자연스럽고 긴장된 목소리. "난 내가―난 내가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무슨 생각이었어? 이게 우리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는데 네가…"


할은 카메라를 보고 있지 않았다. 좌우를 빠르게 훑고 있는 두 눈동자. "할." 브루스가 말했다. "할, 무슨—"


"물을 마셔야…하는데. 물을…찾을 수가 없었어. 그리고 쏟아버렸어. 보이지가…않아."


브루스는 멈췄다. 할이 커다란 화면에 떠올라 있었다. "보이지가 않는다고." 그가 말했다. "뭐가?"


"모든 게."


그는 가만히 서서 할을 바라보았다. 두 눈이 빠르게, 미친듯이 움직이는 모습을. 할의 눈은 필사적으로 빛을 쫓았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스스로가 화난 것 처럼 들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브루스는 말했다.


"나도…나도 몰라. 모르겠어, 시간 감각이 없어. 제발 그만 물어봐." 할은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숨을 쉴 수도, 말할 수도 없게끔 하는 칼날이 브루스의 심장에 꽂힌 것만 같았다. "가끔 일어나는 일이야." 할이 말을 이었다. "전에 봤어. 몇몇은 마지막 순간에…시력을 잃더라고. 사실은…사실은 이게 더 나은 거 같아. 열이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은 것 같거든. 그렇지만 정말…어지럽네. 물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


"내 목소리 잘 들어." 브루스가 말했다. "물은 네 뒤에 있어. 문 가까이에 있는 식판 위에. 그쪽으로 이끌어 줄게."


"못하겠어. 나…나 너무 피곤해. 그냥—"


"내 말 잘 들어!" 그가 소리쳤다. "젠장, 조던, 내 말 똑똑히 들어. 지금 당장 일어나서 물을 가져와, 이 안쓰러울 정도로 자기연민에 찌든 나르시스트 애어른 자식아. 그 겁쟁이 같은 몸뚱아리 당장 일으켜."


할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의 흔적이 떠올랐다. "너 정말로 누군가를 잃는 걸 감당 못 하는구나, 응?"


"일어나!" 그는 소리 질렀고, 할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넘어졌다. 그의 몸이 바닥에 쿵 하고 부딪히는 소리. 비틀거리는 모습. 그는 숨을 멈췄다. 할의 머리가 다시 화면에 떠올랐다. 간이침대에 몸을 반쯤 걸친 채였다. "좋아," 그가 헐떡였다. "길을 좀 잘못 들었네."


"다시 해봐." 브루스가 말했다. "두 발로 서. 몸이 적응할 시간을 줘. 그냥 서 있는 데만 집중해봐."


"알겠어." 그가 말했다. 그는 손을, 온 몸을 떨고 있었지만 끝내 몸을 일으켰다. 할은 벽을 마주보고 서 있었다.


"잘했어. 이제 왼쪽 발을 한 걸음만큼만 뻗어봐. 들어올리지 말고 미끄러뜨려. 그러는 게 덜 어지러울 거야."


"난…알겠어."


"이제 몸을 왼쪽으로 돌려. 물은 한 시 방향으로 열 한 발짝 떨어진 곳에 있어."


그는 할이 애쓰는 것을 지켜보았다. 할이 심하게 비틀거리자 브루스는 그가 또 다시 넘어질까 두려웠다. "오른손을 뻗어." 브루스가 말했다. "벽이 만져질거야."


"알겠어."


"좀 나은가?"


"그래."


"물은 네 오른쪽에 있어. 벽을 짚은 채로 조심해서 손을 내려봐. 그리고 오른쪽으로 20센치 정도 뻗어 봐. 식판이 만져지나?"


"응."


"물은 식판의 북서쪽에 있어. 쓰러뜨리지 않도록 천천히 손을 움직여. 만져지면, 컵을 들어서 물을 마셔. 전부 다 마셔야 해. 알아듣겠어?"


"난…그래."


그는 할이 물을 마시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할의 손이 떨렸다. 브루스는 한 번도 할의 손이 떨리는 걸 본 적 없었다. 그는 호흡을 멈춘 채 할이 무사히 물을 마시길 바랐다. 안에 든 물을 다 마시고 난 뒤, 컵이 할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굴렀다. 할은 이제 잡을 곳을 찾는 것처럼 벽에 손가락을 박은 채로 기대있었다. "할." 브루스가 부드럽게 말했다. "잘했어. 이제 침대로 돌아가."


"알아. 그냥…잠깐 쉬는 거야."


"머리를 심장이랑 수평으로 두고 있어야 해."


"오, 안 그러고 싶어도 곧 그렇게 될 거야." 


"기절할 거 같으면 바닥으로 몸을 미끄러트려. 가능한 한 머리 부상을 피해야 하니까." 


"그래, 지금 조심해야 할 게 그거지." 할은 벽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브루스가 볼 수 있는 건 할의 정수리가 다였다. 어차피 감겨있을 눈 아래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브루스." 그는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웃긴 거 말해줄까?"


"그래."


"나 정말 정말 정말 어둠이 싫어."


브루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지워버린 파일에서 본 내용을 떠올리며, 왜 할 조던이 어둠을 싫어할지 고민했다. 이제 할은 어둠에 갇힌 채 그곳에서 죽을 것이다. "더 웃긴 거 말해줄까?" 브루스가 말했다.


"해보셔."


"나도 어둠이 싫어."


할은 대강 화면이 있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건…하나도 안 웃겨, 사실."


"그래, 그렇지."


할은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좀 덜 어지러워. 물이 도움이 됐나봐."


"침대로 돌아가는 것도 해 볼래?"


"아니, 그냥 여기 좀 더 있을래. 도와줘서 고마워."


"내가 제대로 못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고마워하지 마."


"브루스,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어. 지금도 없고. 그냥…나랑 계속 통화나 해줘, 알겠지?"


"그럴 거야. 아무 데도 안 가."


"아마도 너한테 가끔 완전 좆같이 굴어서 미안하다고 말하기 좋은 타이밍 같네."


브루스는 짧게 웃었다. "반면," 할이 말을 이었다. "잘하는 걸 하라는 말도 있잖아."


"그런 말이 있지."


“어쨌든 간에 그냥 네가 너무 섹시해서 화났던 거 같아. 처음으로 같이 싸웠을 때 기억해? 다크사이드랑? 네가 카울을 벗자마자 난 와 씨발 존나 잘생겼네, 상태였다고. 그러고 나서 드는 생각이라곤 젠장, 이제 앞으로 몇 년이고 저 개자식한테 끌리게 생겼다는 게 다였어." 할은 여전히 눈을 감고 벽에 머리를 기댄 채, 다시 브루스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브루스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목이 바짝 말랐고, 가슴이 죄어왔다. 처음으로 할이 그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놀랐구나." 할이 말했다.


"그래."


"뭐, 난 많은 사람들한테 끌려. 너무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물론이야."


“네가 그러고 싶다면, 상관없지만.”


"난…확실히 하고 넘어가지. 지금 나한테 작업거는 건가? 지구에서 6천광년 떨어진 곳에서 죽어가는 와중인데?"


할이 웃었다. 원래 할에 가까운―숨김없고 느긋한, 흰 치아가 반짝이는 미소. 수염 자국, 잿빛 안색, 그의 얼굴이 얼마나 끔찍히 야위었는지를 잠깐이나마 잊게 해주는 미소. "그런가 봐." 그가 말했다. "이렇게 타이밍이 안 좋을 수가. 허."


"할 말은 해야겠군," 브루스가 꼬집었다. "좋은 타이밍이라고 더 잘 통했을 거라는 건 아니야."


할은 다시 웃었지만, 웃음소리는 도중에 기침으로 변했다. 지독하고 물기어린 기침. 페에 물이 차 있는 것이다. "할." 그가 말했다. "다시는 채널을 닫지 마. 약속할 수 있어?"


할의 기침은 잦아들었지만, 그가 숨을 고르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할은 다시 벽에 몸을 기댔다. "언젠가는 닫아야 해." 할이 말했다. "이 병은…끝으로 가게 될수록 네가 보고 싶어 할 광경이 아니야."


"내가 보고 싶은 건 너야." 


할은 그 말에 조용해졌다. 이 거리와 각도로는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읽기가 어려웠다. 할의 얼굴 대부분이 가려져 있었다. "그래."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좋아. 나도 그럴 수만 있다면 널 보고 싶어. 있잖아, 지금 뭘 입고 있는지 물어보면 이상하려나?"


"난…정장은 아냐. 청바지랑 셔츠 차림이야.”


"청바지라고. 눈이 안 보이는 게 이렇게 유감스러울 줄이야. 어떤 종류의 셔츤데?"


"흰색 긴팔. 어떤 종류냐면…글쎄, 저지인가. 앞에 단추가 달려있어.”


"소매를 내렸어, 아니면 걷었어?"


"걷어 올렸어."


"와우. 끝내주겠네. 들어봐, 갑자기 든 생각인데, 내가 죽고 나면 군단이 거의 바로 알게 될 거야. 반지가 걔네한테로 돌아갈 테니까. 걔들 기록상으로 네가 유족이니까 사망 위로금이 너한테 갈 거야."


"군단에 사망 위로금이 있다고?"


"응, 꽤 짭짤해. 너한테 돈을 보낼 방법을 찾겠지. 하지만 네가 돈을 보내줘야 할 사람들이 있어. 적을 순 없으니까 주소를 불러줄 수 밖에 없겠네."


"주소라면 알고 있어." 브루스가 말했다.


"주소라면 알고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조사를 좀 해봤어."


할은 몸을 더 일으키려고 애썼다. 이제 그의 얼굴이 더 잘 보였다. "너…무슨…좆까, 브루스. 내 인생은 너랑 아무 상관 없어."


"시간은 절약했잖아. 그리고 대부분의 돈이 네 은행 잔고 근처에도 안 가는 걸 보니, 왜 그렇게까지 월급이 필요했는지 알겠던데."


할이 화면으로부터 얼굴을 돌리자 브루스가 볼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그는 기침 발작 이후 여전히 공기를 갈구하는 것처럼 입을 반쯤 벌리고 있었다. 어쩌면 폐에 찬 물이 그를 천천히 질식시킬지도 몰랐다. 할은 강했고, 감염되기 전에 최적의 신체 상태를 갖추고 있었다. 쉽게 죽을 리가, 죽게 해줄 리가 없었다.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할이 반지를 써서 끝장을 볼 건지 궁금했다. 끝없는 어둠에 갇힌 채 고민하고 있는 건지 알고 싶었다. "미안하다고 한 거 취소야." 할이 힘없이 말했다. "너한테 좆같이 군 걸로 사과한 거."


"그럴 줄 알았어."


"내 인생에서 손 떼, 박쥐."


브루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할은 또 다른 기침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몸을 굽히곤 방바닥에 무언가를 뱉어냈다. 고개를 들었을 때, 할은 전보다 더 창백해 보였다. "만약 네 기분이 좀 나아진다면," 브루스가 말했다. "내 인생에 대해서 말해줄 수도—"


"나아지지 않아." 할이 말했다. "그걸로 기분이 나아지진 않는다고. 이게 내 프라이버시를 완전히 침해하고선 날 달래려고 묻지도 않은 네 삶에 대해 말해주는 엄청나게 특별한 순간이라면, 그냥 좆이나 까—” 세 번째 기침이 그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시간이 꽤 흐른 뒤에야 다시 할의 정수리를 볼 수 있었다.


할은 손등으로 입을 닦았다. "생각해 보니까,"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그가 말했다. "이젠 별 상관없는 것 같네."


"상관있어." 브루스가 말했다. "사과하지."


할이 그를 향해 머리를 홱 돌리고 텅 빈 충혈된 눈으로 브루스의 왼쪽 어딘가를 응시했다.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게 이제야 실감이 나는군."


브루스는 할이 일어서려 애쓰며 몇 걸음 비틀거리다가 간이 침대로 풀썩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땀으로 얼룩진 할의 티셔츠. 그는 차가운 천으로 몸을 닦고, 깨끗한 시트에 누워서, 모든 종류의 항바이러스제와 링겔을 존재하는 모든 정맥에 꽂아야 했다. 그 대신, 그가 가진 건 이게 다였다. 할 조던은 이보다 더 나은 취급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그는 대부분의 인생에서 겪은 것보다 훨씬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더더욱이나 죽어가는 순간만큼은.


"진짜로 사과할 거라면, 미안하다는 말을 취소한 걸 취소해야겠네, 비록," 그는 말을 멈추고 목울대를 넘겼다. "내 생각엔 너도 나한테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나랑 알고 지내던 동안 완전 개자식처럼 굴었던 거 말이야. 알다시피, 나 지금 죽어가고 있거나 뭐 그렇잖아."


브루스는 생각에 잠긴 채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그는 할이 뭐라도 입 밖으로 내뱉기 위해, 그를 짓누르는 견딜 수 없는 침묵을 채우기 위해 말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경우의 수가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클락을 보내고, 군단과 접촉하고, 리그를 출동시키고, 클락이 도착하기 전에 그가 저항할 수 없도록 의식을 잃게끔 유도할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할 조던이 우주 반대편의 독방에서 죽는 걸 손 놓고 볼 수만은 없었다.


"브루스? 브루스, 거기 있어? 어디—거기 있어?"


"미안," 그가 말했다. "미안해. 여기 있어."


"오. 알겠어. 네가—네가 가버린 줄 알았어."


"아무 데도 안 가."


"게임 한 판 할래?"


"무슨 게임?"


"지금이 6달 전이고, 이 모든 게 일어나지 않은 척 하는 게임."


"완벽한 게임 같네."


"맞아, 진짜로 그래. 리그 미팅을 끝낸 다음이라고 치자. 서로를 향해 소리지르면서 끝나지 않은 미팅 말이야."


"너한테 소리지른 적 없어. 난 네 4학년 체육 선생님이 아니야, 조던."


"좋아, 그럼.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해. 네가 나한테 으르렁대지 않고 끝난 걸로 하자, 좀 낫냐? 어쨌든 간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냥 미팅 끝나고 얘기하는 중이라 치자고. 아무 말이나 하면서."


"뭐에 대해서?" 브루스가 회의적으로 말했다.


"뭐에 대해서냐면…몰라, 뭐든지 상관없어. 너 이 게임 더럽게 못하네. 어릴 때 역할 놀이 해본 적 없어? 커서 코스프레하려고 아껴두고 있었나?"


"코스프레라고?"


"아, 진짜 좀—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리가 하는 게 코스프레가 아님 뭐야. 리그에 있는 전부가 그렇잖아. 다른 점이 있다면 너는 네가 뭘 입을지 직접 디자인한다는 거고 나는 안 그런다는 건데, 그래서 네 코스튬이 몇천 배는 더 멋져 보이나 봐. 씨발 망토라니. 왜 망토에 대해 협상할 생각을 안 해본 거지? 군단이 망토를 입게 해 줬을까? 내 최고의 자산을 가리긴 하겠지만 말이야. 너도 그 점은 동의할 거라 생각해."


할은 열에 들뜬 텅 빈 눈을 한 채 또다시 아무렇게나 지껄이고 있었다. "어떤 역할 놀이를 하고 싶은지 말해봐." 브루스가 말했다.


"까먹었어. 어차피 바보 같은 거야."


"말해줘."


"그냥 우리 사이가 달랐더라면 어땠을지, 그런 척을 해보고 싶었어. 그게 다야.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본 적 있어? 당연히 없겠지. 이런 생각만으로도 네 뇌 조직이 부풀어 오를 테니까."


그는 뭐라고 대답할지 고민했지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할이 그를 볼 수 없다면, 조용한 동조는 도움이 안 될 터였다. "네 질문을 어물쩍 넘겼었어." 마침내 브루스는 말했다.


"그래? 어떤 질문?"


"프린스턴에서 쫓겨난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거."


"알겠어. 듣고 있어. 뭘 했길래?"


"1층 욕조에서 손목을 그었지."


할이 조용해졌다. "음." 잠시 후 그는 말했다. "알 거 같네. 뭐 때문에 그만둔건데?"


“그만두지 않았어. 알프레드가 날 발견했지만 원래 일정대로였다면 그럴 일 없었을 거야. 원래대로라면 알프레드가 집에 있지 않았을 테니까. 사려깊게도 제일 청소하기 쉬운 화장실을 골랐지. 당시엔 완전히 논리적이라고 생각했어.”


"알프레드의 심정이 어떨지 생각 안 했어?"


"안 했지." 브루스가 말했다. "난 네가 가지고 있는 소질이 없으니까. 넌 나랑 다르게 그럴 듯한 말을 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쉽게 마음을 주잖아. 네 행동이 남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제일 먼저 생각하고. 나한텐 쉬운 일이 아니야. 한다고 하지만, 저절로 하게 되는 게 아니지."


"아직도 흉터 남아 있어?"


"남아 있어."


"네가 긴팔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인가?"


"그래."


"너라면 확실하게 제대로 했을 테니까. 넌 뭐든 대충 해치우는 법이 없잖아."


"제대로 했지."


"다른 사람한테 말한 적 있어? 내 말은, 알프레드랑 알프레드가 널 살리려고 불렀을 의사 9천명 말고."


"없어. 리그의 사람들은 싸우다가 생긴 상처라고 생각할 거야. 말했듯이,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그래. 당장 제일 좋아하는 비유는 아니네."


"미안."


"있잖아, 브루스."


"그래."


"아마도 이제 자야 할 거 같아. 그냥 기절하는 걸지도."


"베개는 있나?"


"어, 쌓여 있어."


"벽에 기대서 앉은 채로 네 등 뒤에 받쳐. 그렇게 자려고 해 봐. 폐에 물이 차 있으니까 그 편이 나을거야."


"알겠어, 이렇게—이런 식으로?"


"그래, 바로 그렇게."


"브루스."


"여기 있어."


"뭔가 그럴듯한 말을 생각해 내려고 했어. 배리한테. 올리버한테. 네가…모르겠어, 생각이 안나. 네가 대신 지어내줘."


그는 침묵 속에 가라앉지 않으려고 애썼다. 입을 열어서 불합리하게 굴고 있다고, 괜찮을 거라고, 죽어가고 있지 않다고 할에게 말해주려 애썼다. 그렇지만 누구라도, 더군다나 삶의 마지막 순간엔 진실을 들을 자격이 있었다. 만약 그 자신이었다면 그걸 원했으리라. "물론이야." 브루스는 말했다. "몇 줄 적어 놓을게. 네가 썼다고 생각하도록 쉬운 단어들만 써서."


대부분 수염에 가려진 얇고 튼 입술에 느릿한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개자식 같으니." 할은 속삭였다. "너한테 할 말도 지어내라고 하려 했는데, 넌 꽤나 유능한 탐정이잖아. 어차피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알 거라고 생각해."


흉포한 발톱이 그의 목을 조였다. 대답하려 했지만 목에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알아두도록 해." 브루스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방은 어둡지 않아. 충분한 빛으로 가득 차 있어. 너는 어둠 속에 있지 않아, 장담할게."


"다행…이네." 할의 목소리가 너무나 희미한 나머지 무언가를 더 말했는데 듣지 못한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눈을 깜빡 뜬 채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고마워." 그는 말했다. "계속 통화해줘서.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할은 브루스가 볼 수 없는 화면 아래의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할, 지금 뭐 하는—"


"조던 아웃." 동시에 화면이 까맣게 물들었다.


"안 돼―!" 브루스가 소리쳤지만, 너무 늦었다. 그의 모든 행동이 그랬듯 너무, 너무 늦었다. 그는 떨리는 몸으로 화면에 떠오른 블루스크린 앞에 서서 텅 빈 화면을 바라보았다.


Twitter @DR34MY3Y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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