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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뱃할/번역] Aliens Made Us Do It 5


그 다음부터 그는 채널을 항상 열어두었다. 할이 언제 신호를 보내는지 기억해두었고, 브루스가 케이브에서 일하고 있을 때와 우연히 겹친다면, 뭐, 잘된 일이었다. 그를 위해 일정을 바꿀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할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모니터에 붙어있다는 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할 역시 브루스가 곁에 없을 때 다른 소일거리를 찾는 게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한번은 패트롤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알프레드가 그의 의자에 앉아있는 걸 발견했는데, 랜턴의 얼굴이 스크린에 어렴풋이 떠올라 있었다. 알프레드는 군대에 있던 시절의 얘기를 하고 있었고, 할은 멍청이처럼 웃던 중이었다. 심지어 알프레드는 의자에 기대 다리를 꼬고 있었는데, 알프레드가 병원 침대를 제외하고 어디 기대 있는 걸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가 방해했나 보네요." 브루스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며, 카울을 벗어던졌다.


"오, 아닙니다, 브루스 주인님. 캡틴 조던과 군대 활약상에 대한 뻔한 거짓말로 서로를 즐겁게 해 주고 있었답니다. 뭐라도 갖다 드릴까요?"


"괜찮아요. 내 의자에서 비킬 필요는 없어요."


"잘 됐군요. 하던 말을 계속 하도록 하죠. 라발 핀다르 지방 외곽에 붙잡혀 있었는데, 문득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려서—"


브루스는 샤워실로 향했고, 뜨거운 물줄기 아래 할 수 있는 한―선 채로 잠에 빠져드는 기분이 들 때까지 서 있었다. 그의 몸이 잠들도록 속이기에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몸이 항복할 때 까지 물줄기를 맞고, 간이침대까지 비틀거리며 걸어가기. 어차피 케이브에서 잠이 더 잘 왔다.


샤워할 때 봤어. 랜턴이 그렇게 말했었다. 꿈틀거리는 감각이 뱃속에서 천천히 타오르다가 더 아래 쪽을 비틀었다. 전혀 걱정할 거 없겠던데. 할의 목소리에 배여있는 감탄어린 미소. 샤워하는 자신을 지켜보는 할 조던. 할이 그를 봤다고. 물론, 할의 성적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은 제일 가까운 소화전에 오줌을 갈기는 레브라도보다 나을 것이 없었지만, 할의 눈이 그를 향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혹은 그를 짜증 나는 인간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나.


할은 아마 모든 사람이 샤워하는 모습을 봤을 터였다. 무심코 흘린 말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위에 대한 음흉한 발언은 잊어버리기 힘들었다. 하루에 예닐곱번이라고 했었나. 할의 모습이 예상치 못한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다 벗은 채로, 간이침대에서 허리를 휘며, 입을 벌린 채 스스로를 만지고, 손을 점점 더 빨리 움직여서—


브루스는 샤워 레버를 쾅 소리 나게 쳐서 물을 끄곤 타월로 몸을 단단히 감쌌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자, 이건 어때." 할은 간이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카메라가 살짝 다른 각도에 놓인 채 브루스가 읽을 수 있도록 화면이 기울어져 있었다. "'그는 미소짓고는 어깨에 쇼핑백을 늘어뜨린 채 새로운 목적을 가지고 가게를 나섰고, 강렬한 여성호르몬이 내 몸을 타고 전율했다.' 아니, 이게 대체 뭔 소린데? 첫째, 본능적인 섹스 호르몬은 테스토스테론이고, 그건 남성호르몬이잖아. 그리고 전율한다고? 라임 젤리 한 사발이 이것보단 꼴리겠다."


"왼쪽으로 4도 정도 기울여." 브루스는 가늘게 뜬 눈을 현미경에서 떼지 않은 채 통신기에 대고 말했다. "보이나?"


"나한테 보내기 전에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품질 관리를 하긴 하는거야? 잠깐 잠깐, 내 기억상으로 더 심한 게 있어. ‘내 몸 속의 자그마한 여신이 부드럽게 영광스러운 삼바를 췄다.’ 봐, 이 아가씨가 자기 질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건 알겠어. 말 그대로, 질 말이야. 존나 소름끼치는 게 뭐냐면 작은 여신 어쩌고 하는 게 꼭 거기 안에 고대 고양이 조각상이라도 집어넣은 것 처럼 들린다고. 내 말은…이런 인간들도 책 계약을 따낼 수가 있나?"


"가봐야 하는 거 아니예요?" 딕의 목소리가 인이어를 통해 들려왔다. "들리는게 꼭—"


"무시해라. 한 시간은 잡고 있어야 해. 4도 회전시키는 건 해 봤니?"


"해봤는데 소용 없어요. 잠깐만요, 다시 측정해 볼게요."


"아, 이건 그냥 슬플 지경이다." 할이 다시 입을 열었다. "들어봐. ‘이제서야 왜 다들 유난인지 알 수 있었다. 마치 돌아가는 세탁기처럼 조금씩 조금씩 찾아오는 두 번의 오르가즘이라니.' 이 여자가 오르가즘을 빨래에 비유한 걸 보고 있자니 당장 뛰쳐나가서 바이브레이터를 9천개쯤 사서 그냥,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한테 하나씩 쥐여주고 제발, 신께 맹세컨대 이걸 써 보세요, 존나 장담하건데 빨래 같은 구석은 조금도 없을 거라고요 라고 말하고 싶어. 게다가 오르가즘 두 번 가지고 뿅 갔다니? 이 사람 여자잖아.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네 번은 갈 수 있어야 한다고. 남자가 얼마나 못하는 놈이길래?"


"랜턴." 브루스가 분노를 담아 말했다.


"조용히 하라고?"


"그래 주면 고맙겠군." 그는 몇 분 동안 현미경에 집중했지만, 이어지는 침묵은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피부로 느껴지는 할의 시선. 브루스는 통신기의 연결을 끊고 주변의 모든 것들에 신경을 끈 채 현미경 아래에 있는 3평방밀리미터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조용히 읽을 수도 있어." 몇 분 뒤 할이 속삭였다.


"널 몇 년 동안 알고 지냈다고 생각하는 거지? 뭐라도 조용하게 하는 걸 본 적이 없어." 그는 렌즈로 시선을 돌렸다. 화면으로부터의 침묵. 브루스는 고개를 들었다. "섹드립 칠 생각이었지, 안 그래?"


할의 미소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이제서야 서로 알아가는 것 같네." 


"신이시여."


"위선자. 무신론자면서."


"관심이 없었나 보군.” 그는 렌즈 세팅을 조절하며 말했다. “특별히 독실하진 않지만, 무신론자는 아니야.”


"그래? 난 무신론잔데. 말해봐, 네가 여태까지 목격한 난리통을 보고도 우리한테 요만큼이라도 신경 쓰는 신인지 뭔지 하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해?"


"꼭 그렇다고 말한 적 없어. 네가 말한 것처럼 내가 목격한 난리통 때문에, 우주에서 모든 걸 조종하는 지적 생명체의 존재 여부에 대한 답은 아직 내리지 못했어. 그렇지만 불교는 특정한 신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지 않아. 그저 단순히 모든 삶의 연속성에 대한 인식을 품고 있을 뿐이고, 그건…위안이 되지."


"흠." 조던이 말했다.


"심오한 신학적 의견 고맙군."


"난 그냥, 흠, 네가 그걸 위안으로 삼는 거에 놀랐을 뿐이야. 개자식 몇 명을 아는데, 난 그 새끼들이 계속해서 살아갈 거라는 사실이 싫어. 도마뱀인가 뭔가 하는 환생 얘기는 하지도 마, 왜냐면 결국은 먹이사슬의 희생양이 되고 말 테니까. 기회는 그걸로 땡이라는 것도 있다고."


브루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사람들은 실수를 하지."


"오, 그래. 맞는 말이네. 네가 사람들이 실수하는 거에 얼마나 무른지 잊고 있었어."


"내 말은, 선한 사람들조차 고쳐야 할 실수를 한다는 거야. 요양원에 계시는 네 할머니조차도 이 생에서든 다른 생에서든 바로잡아야 할 후회스러운 일을 저질렀을걸."


"하." 할이 말했다. "우리 할머니는 사악한 두꺼비같은 여자였는데다가, 앰버가 돈 때문에 그녀를 속이려고 할 때 딱 한번 만나봤어. 내 말 믿어, 부정적인 감정 밖에 없었으니까."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군."


"너는?"


"우리 할머니 말인가?"


"그래. 한 명 정도는 계셨을 거 아니야."


브루스는 눈을 비비고 한숨을 쉬었다. "피곤하구나." 할이 말했다. "내일 말해줘도 돼. 그 동안 내가 새로 제일 좋아하게 된 책에서 소리내 읽을 만한 재밌는 부분이나 찾고 있지, 뭐."


"조던." 그는 으르렁거렸다.


"불만 있으면 책이나 몇 권 더 보내주던가. 잠깐만,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만. 이게 ‘토하는 동안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소리지르고 싶게 만드는 책 구절들’ 대회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야. 준비 됐어? 완전 제대로라고." 그는 화면에 기대어 낮고 숨소리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아! 그가 내 처녀성을 관통하는 동시에 섬뜩히 꽉 끼는 감각에 신음했다.’" 그는 아아 부분을 가능한 한 드라마틱하게 흉내냈다. 데미안이 근처에 없는 걸 다행스럽게 느끼게끔 하는, 헐떡이며 길게 늘어지는 신음.


"진심으로," 할이 말을 이었다. "국제적인 차원에서 작가가 섹스한 모든 사람을 찾은 다음 엄청난 돈을 주는 캠페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섬뜩히 꽉 끼는 감각이라니? 여태까지 이 여자는 섹스를 A. 빨래랑 B. 별 볼일 없는 과학 기술에 피가 솟는 것으로 비유했어. 당장 지구로 돌아가지 않으면 인류의 생식활동의 미래가 어떻게 되련지 몰라." 


“좋은 밤 보내, 랜턴.” 브루스는 간결하게 말하곤 화면의 소리를 껐다.




브루스에게 수면이란 18시간 동안의 마라톤이거나 절망적으로 천장을 바라보다 간헐적으로 눈을 붙이는 일이었다. 그 중간은 없었다. 잠은 지붕을 뚫고 날아와 그를 발톱으로 잡아채고 놓아주지 않거나, 혹은 (오늘 밤이 그렇듯이) 그의 위에 올라탄 채 먹잇감을 가지고 놀듯 그를 희롱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잠시 후 브루스는 잠드는 걸 포기하고 적어도 일이나 좀 해놓을 생각으로 케이브로 향했다. 어떨 때는 거기서 잠이 더 잘 왔고, 담요를 덮은 채 의자에서 깨 보면 옆에 미지근한 허브티가 놓여 있기도 했다. 알프레드는 그가 쉽게 잠들지 못한 밤에는 절대로 커피를 주지 않았다 – 알프레드가 여전히 그가 무엇을 언제 먹어야 할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새디스트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양쪽 모두 충분히 가능성 있는 가설이었다.


할이 할머니를 언급한 것은 흥미로웠다. 만약 너무 지루한 나머지 혀가 느슨해지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흘리지 않았을 얘기라는 걸 알았다 - 아무 생각 없이 언급한 앰버라는 이름이 힌트였다. 권태, 불규칙한 수면, 이유가 뭐건 간에, 브루스의 흥미를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할의 배경 파일은 그의 기준에선 한심할 정도로 짧았고, 조금 더 채워넣기에 좋은 기회임이 틀림없었다. 파일은 할이 군대에서 있을 적의 기록을 매우 상세하게 담고 있었지만, 그 이전에 대해선  출생지와 출신 고등학교가 거의 전부였다. 왜 진작 조사해보지 않았던가? 전체 그림을 보기 위해 조사할 게 별로 많지도 않았고, 그 중 대부분은 공공 기록에서 긁어온 것이었다. 완성된 그림은 별로 예쁘지 않았다. 브루스는 가만히 앉아 추한 사실들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좋은 탐정이라면 진작 찾아봤으리라.


할의 공군 아버지는 충분한 퍼즐 조각이었지만, 그동안 군인 아버지가 으레 그러리라 넘겨짚은 평범함과 안정성에 눈이 가려져 있었다. 선대 캡틴 조던은 할의 어머니와 법적으로 결혼한 적이 없었는데, 전 여자친구가 할이 그의 친자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걸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좌우간 할의 어머니, 소위 앰버는 유족 보상금을 받지 못했으니까. 두 명의 형제가 더 있었는데, 둘 다 남자아이였고 아버지가 달랐다. 어느 순간부터 법정 출두와 해고 기록으로 앰버의 발자취는 따라가기 쉬워졌다. 그곳에서마저 잘리기 전까지 가지고 있었을 월그린 직원 뱃지. 마약이 이 그림의 큰 부분을 차지했을 것이라 말해주는 빈약한 사진 기록이었다. 앰버의 뇌는 그녀의 은행 잔고만큼이나 뻥 뚫려 있을 것이며, 할의 유년 시절 절반 이상을 집세를 낼 만큼의 돈도 없이 살았을 것이다. 


그는 이 모든 정보를 잘 정리된 파일로 모았고, 신중한 단어 몇 개로 정리했다. 그리곤 무슨 이유에서인지 가만히 앉아서 손을 모은 채 모든 정보가 펼쳐져 있는 화면을 응시했다. 이 파일을 바라보는 그의 차분한 눈길에 할이 어떻게 반응할지 문득 궁금해졌다. 피도 눈물도 없는, 특히나 할에게 있어 피도 눈물도 없었을 기록들. 브루스는 이것들이 단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을 거라는 데 돈을 걸 수도 있었다.


그는 가만히 앉아서 그저 바라보다가,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려 그가 모은 정보들을 백스페이스 했다. 파일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컴퓨터가 물었고, 그는 엔터를 눌렀다. 물론 파일엔 보안이 걸려 있지만 그걸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할이 그가 이걸 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수치스러워할 거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할의 화를 돋우는 일이라면 밤낮 구분 않고 기꺼이 하겠지만, 수치를 준다? 그건 다른 문제였다.


브루스는 여전히 손을 모은 채 이제는 텅 빈 화면을 바라보았다. 수치심을 가져야 할 사람은 할이 아니었다. 정작 그래야 할 사람들은 절대로 수치스러워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뭐냐면," 클락이 말했다. "내가 그 파티에 가는 거야. 은밀하게 행동할 수 있어. 좀 서성거리다가, 대화 중에 바이알리아에서 일어나는 일의 단서를 엿듣는 거지. 어떤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지, 어떤 거래를 주고받았는지 뭐 그런 거. 리그가 그자들 머리 꼭대기에 있어야 하잖아.”


"동의하는 바야." 브루스가 말했다. "그렇지만 파티에 네가 볼 일은 없어."


"뭐라고? 말도 안돼. 난—"


"자네가 데일리 플래닛의 제일 가는 취재 기자일진 몰라도, 바로 그게 브루스 웨인이 자기 집에서 바이알리아 대사를 위한 갈라를 열며 자네를 절대 초대하지 않을 이유야. 안돼."


"브루스, 그러지 말고. 내가 목에 기자증이라도 걸고 올까봐?"


"아니. 그렇지만 보안은 엄중할 거고, 손님 전체 목록을 사전 조사까지 마쳐서 대사관으로 넘겨야 해. 기자가 목록에 있으면 안 돼. 브루스 웨인이 그걸 감수할 리가 없잖아."


"브루스 웨인은 자기를 삼인칭으로 잘도 말하네." 할이 스크린을 통해 말하자 클락이 모니터의 띵 소리에 놀라 뒤돌아봤다. "여어, 클락. 잘 지냈어? 파티 얘기는 다 뭐고?"


"무시해." 브루스는 한숨을 쉬었다.


"할?" 클락은 혼란스러워 보였다. "너—너 거기서 뭐 하고 있어?"


"말하자면 길어. 너만 시간 있으면 말 못 해줄 것도 없지만. 그러니까 뭔 일이 있었냐면—"


"그럴 시간 없어. 클락과 나는 논의해야 할 리그 일이 있어." 브루스가 딱 잘라 말했다.


"알겠어, 알겠어. 니네 맨날 그러잖아, 불공평하게. 어른들이 얘기하는데 끼어들지 말라는 거지. 너랑 클락이랑 다이애나끼리 아무한테도 말 안 하는 비밀 모임을 만들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라고."


"그런 거 없어." 클락이 말했다.


"없다고?" 브루스가 말했다.


"우리가 무슨—아니, 그런 거 아니야." 클락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하거나 하는 건 아니잖아."


"아니지." 브루스가 말했다. "바이알리아에 대한 주제로 돌아가서, 네가 대사의 수행원을 감시할 기회는 충분히 있겠지만 저택에서의 파티는 최악의 선택지야. 첫 번째로, 이미 충분하고도 남을 감시를 저택에 심어뒀어. 두 번째로, 바로 다음 날 기자회견이 있을 예정인데, 무슨 가능성이 있냐면—"


"근데." 할이 끼어들었고, 브루스는 이를 갈았다. "아무도 기자회견에서는 진짜 대화를 하지 않을 거라는 게 클락이 하려는 말이라고. 걔네가 긴장을 풀고 있을 때 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는 거지, 클락?"


"음…맞아." 클락이 여전히 화면에 뜬 할의 모습에 혼란스러워 하며 말했다. "내 말은, 그게 내가 하려던 말이었어."


"클락을 웨이터나 뭐 그런 걸로 변장시켜. 잡역부 중 한명으로. 에피타이저 접시를 밤새 들고 있게 하던가 말던가. 아, 파티 음식 완전 쩔어주겠지. 메뉴 보내줄 수 있어? 클락, 짧게 설명하자면 여섯 달째 좆같은 격리실에 갇혀 있는데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않으면 브로콜리를 휴지로 대신할 지경이야."


"여섯 달? 잘 이해가 안 되는데—"


"21일을 말하는 거야. 그린 랜턴이 삼 주 동안 혼자 있으면서 정신이 나가버렸다고 말해주는 걸 깜빡했군."


"오." 클락은 걱정스러워 보였다. "격리라니 심각하게 들리는데. 괜찮은 거야?"


"괜찮아. 바이알리아 대사와의 문제는 그녀가 강력한 기술을 몸에 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일은 기하급수적으로 어려워지겠지."


"뭐, 음식은 거지 같아." 할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것 말고는 존나 지루한 게 다야. 오, 대박인 게 뭐냐면 : 배트 케이브의 통신 메인프레임이랑만 연결이 된다는 거지. 그래서 브루스밖에 대화 상대가 없어."


"세상에나." 클락이 말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나 바로 여기 있거든." 브루스가 말했다. "그리고 하던 얘기에 집중 좀 하면—"


왜  말하다 마는지 궁금해하며 클락은 몸을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브루스?"


그렇지만 브루스는 그날 처음으로 할을 제대로 보고 있었다. 할은 항상 하던 것 처럼 간이 침대 뒤의 철제 벽에 기댄 채였다. 그는 브루스와 시선을 맞췄다. 할의 핏발 선 눈. 거의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가느다란 땀방울이 그의 헤어라인 근처의 얼굴 옆면에서 흘러내렸다. 브루스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알고 있다는 듯한 눈은 브루스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사실은," 브루스는 클락에게로 몸을 돌렸다. "사실은, 조금―조금 피곤하군. 바이알리아 방문까지 시간은 충분하니까, 그 전에 무슨 계획을 떠올려보자고. 좀 쉬어야겠어."


"괜찮나?"


"괜찮아." 그는 쏘아붙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말했다. "그냥 쉬고 싶어서 그래."


"알겠어." 클락이 안됐다는 듯 말했다. "나중에 의논하면 되지. 랜턴, 잘 지내. 곧 보자고."


"당연하지." 할이 말했다. "쉬엄쉬엄 해."


클락이 저택으로 가는 계단을 올라갈 동안, 브루스는 할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이마에 새로운 땀방울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언제부터 아팠던 거지." 브루스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감기일 뿐이야." 할이 말했다.


"유치장에 갇힌 채 어떠한 병원군과의 접촉도 없었던 데다가, 감기엔 삼 주간의 잠복기가 없어. 언제부터 아팠던 거지?"


"그저께부터. 오늘 전까진 확신 못 했어."


침묵이 내려앉았다. 브루스는 그의 가슴이 약하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광경을 관찰했다. 열은 아마 38.6도에서 38.8도 사이일 것이다. 그는 멍청이였다. 할은 내내 숨기고 있던 것이다.


"네가 달레샨 독감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걸 보내." 브루스가 말했다. "클락의 요새에 있는 정보와 비교해 볼 테니까. 크립톤에 그 병이 돈 적 있나? 우리가 뭘 해보기 전에 병의 경과에 대해 알아야—"


"브루스." 할이 말했다. "그만해. 병의 경과라면 이미 알고 있어. 두 눈으로 직접 봤으니까."


"생존율은?"


할은 말없이 슬픈 미소를 희미하게 지어 보였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젠장, 정보를 보내! 알고 있는 걸 말해주지 않으면 널 도울 수 없어. 클락보고 다시 오라고 해서 즉시 너한테로 보낼게. 정확한 좌표만 있으면 하루 안에 도착할거야. 클락이라면 널 찾기 위해 격리 시설을 손쉽게 찢어버릴테고, 그런 다음 너를 와치타워로 데리고 와서 치료를—"


"브루스!" 할은 몸을 완전히 일으키자 그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할의 눈을 둘러싼 붉은 테두리, 축축한 피부. 전부 생생히 볼 수 있었다. 클락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할은 그 모든 것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몸을 숙이고 있었던 것이다. "브루스, 내 말 잘 들어. 클락을 보내선 안 돼. 내 말 듣고 있어? 이 빌어먹을 병이 크립토니안한테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여태까지 본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진 존나 잘 알고 있어. 클락을 내 가까이에 오게 해선 안돼. 듣고 있어? 감히, 씨발 감히 그러진 마."


할은 다시 벽에 몸을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클락을 그런 위험에 처하게 해선 안돼." 그는 눈을 감았다.


"특수 수트." 브루스가 말했다. "수트를 설계할 수 있어, 광속 이동에 더 잘 버티는 방호복 같은 거. 그게 클락을 보호해 줄 수—"


"안돼!" 할의 얼굴은 이제 하얗게 질려 있었다. "망할, 이럴 줄, 이렇게 될 줄 알았어—브루스, 내 말 잘 들어. 나는 중성자탄이나 마찬가지야, 알았어? 지구 가까이에 이걸 데려갈 순 없어. 네가 그러도록 두지 않을 거야. 인구의 4분의 3을 쓸어버렸다는 부분이 이해가 안 돼? 지구도 똑같이, 아님 더 나쁘게 될지 내기라도 하고 싶어? 만약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우리는—우린 그런 위험을 감수 할 수 없어. 브루스, 제발 내 말 들어."


브루스는 머리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의 말이 옳았다. 그는 머릿속으로 알고 있는 통계를 떠올렸다. 1918년에서 1920년 동안, 스페인 독감이 유행해서 1억 명이 죽었다. 인구 밀도가 훨씬 낮았던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인구의 5퍼센트나 되는 숫자였다. 똑같이 강력한 병원균이라도 현재라면 5배, 6배, 어쩌면 20배는 더 많은 사상자를 낼 터였다. "와치타워에 격리시설을 지으면," 그가 말문을 열었다.


"똑똑히 들어, 개자식아. 내 손가락에 반지 보여? 보이냐고! 눈만 깜빡하면 이걸로 내가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거든. 네가 클락을 보내면, 내가 뭘 어떻게 할 거게? 나한테 5미터 이상 다가오기 전에 내 목을 잘라버릴거야. 내 결단력을 시험하고 싶어, 씨발놈아?”


할이라면 정말로 그렇게 할 것이다. 그 자신이었더라도 똑같이 했을 테니까. "네가 이 병을 지구 가까이 가져가게 하지 않겠어." 할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벽에 다시 머리를 툭 기댄 채 눈을 감았다. 브루스는 할의 목덜미에서 뛰고 있는 맥박을 보았다. 올라간 심박동. 얕은 호흡.


그는 침묵 속에 기다렸다. 브루스는 다른 모니터로 가서 달레샨 독감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모아봤지만,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저기서 긁어온 짧막한 언급들. 클락의 파일엔 더 많은 정보가 있을 것이고, 반지에 있는 정보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분노에 찬 침묵 속에서 타자를 두드리며 비교해 볼 수 있는 모든 걸 살펴보고, 뽑아낸 모든 것을 정리했다. 다른 세계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 만약 바이러스의 우주 경로를 추적할 수만 있다면, 최초 발생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좀 걸릴 거야." 할의 말에 브루스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다시 눈을 뜬 채 브루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말은, 병이 끝까지 가려면 좀 걸려. 2주는 있어야 할걸."


병이 끝까지 가려면. 할이 사실을 말하는 방식은 덤덤했다. 그렇지만 브루스 또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견뎌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물어보려고 했어," 할이 말했다. "계속 채널을 열어놓고 있어도 되는지. 내내 그럴 생각은 아냐. 죽는 건 무섭지 않아. 그냥…혼자 하는 것보단 나은 것 같아서. 그게 다야.”


그의 가슴에, 목구멍에, 말을 잇지 못하게 하는 무언가가 걸려 있는 것 같았다. 브루스는 자신이 가만히 선 채 인상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할은 인상 쓴 그의 얼굴에 그 어느 때 보다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혼자 하지 않아도 돼." 브루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냥, 채널을 닫진 마. 방법을 찾아볼게."


할이 느긋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것 봐," 그가 말했다. "내가 우리의 작은 문제를 해결한 것 같네. 결국 이혼할 필요가 없게 됐잖아."


"조던." 브루스가 입을 열었다.


"법적으로 네가 내 차 할부금을 마저 갚아야 할 사람이 되겠지만. 이 냉혈한 같으니. 이것도 다 네 계획이었지? 이 방법 아니면 네가 살면서 어떻게 현대차를 몰아보겠어?"


"마침내 꿈이 이루어졌군."


"그래, 그 말 많이 들어. 있잖아, 약간 현기증이 나서 눈을 좀 감아야 할 것 같아.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알겠지?"


"조던, 그러지 마—"


"이따 봐, 박쥐." 그리고 모니터에 블루 스크린이 떠올랐다. 강렬한 빛이 케이브를, 가만히 서서 화면을 응시하는 브루스를 비췄다. 그는 잠시 동안 그렇게 보고 있다가 키보드와 달레샨 독감의 두 번째 데이터 세트로 고개를 숙였다. 일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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